최 홍 근      
 영암읍 교동리生
​​​​​​ ​​​​​​전 서울 월정초등학교 교장
​ ​​한국초등학교 골프연맹 부회장

경칩이 지나면서 부쩍 날씨가 포근해졌다. 해도 성큼 길어져서 벌써 나른해진다. 춘곤증은 아니지만, 뱃속이 허전해진 건 사실이다. 자연 입맛이 떨어지고 권태롭기도 하다. 마트에 나가 채소와 나물 코너를 기웃거려 본다.

봄철 미각을 자극하는 냉이, 달래, 씀바귀, 소루쟁이, 참나물, 미나리, 취나물, 유채 나물들이 먹음직스럽지만, 도대체 이 나물들이 산이나 들에서 나는 나물인지 비닐하우스에서 재배된 나물인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농가월령가(農家月令歌)에 등장하는 나물들이 생각난다. ‘정월령(正月令)’에는 ‘엄파와 미나리를 두엄에 곁들이면, 보기에 신선하여 오신채를 부러워 하랴’. ‘이월령(二月令)’에는 ‘산채는 일었으니 들나물 캐어 먹세. 고들빼기 씀바귀며 소루쟁이 물쑥이라. 달래 김치, 냉잇국은 비위에 깨치나니……’. ‘삼월령(三月令)’에는 ‘앞산에 비가 개니 살진 향채 캐오리다. 삽주. 두릅, 고사리며 고비, 어아리를 일 분은 엮어 달고 이 분은 무쳐 먹세’라 하여 갖가지 나물이 달마다 등장한다.

달래 두 묶음, 참나물 한 묶음을 사 왔다. 달래는 깨끗이 씻어 쫑쫑 썰어 간마늘, 국간장, 액젓, 생강청, 참기름으로 양념장을 만들고, 참나물도 깨끗이 씻어 살짝 데쳐낸 뒤 국간장과 참치액젓, 들기름으로 무쳐내면 봄나물 밥상이 마련된다. 여기에 갓 지은 밥에 달래장을 올려 비비고, 참나물을 곁들이면 혀는 춤추고, 코는 상큼한 봄 내음에 취할 거다. 벌써 군침이 입 안에 고인다.

친구들은 나를 미식가(美食家)라 말한다. 아예 틀린 말은 아니지만 난 요리하기를 즐겨서 타칭 최 쉐프라 불리는 걸 좋아한다. 그래서 내로라하는 맛집 순방이 내 유일한 취미이긴 하다. 그곳이 강원도 깊은 산골짜기라도 기어이 찾아가 맛을 보고, 주방장과 이야기한다. 한, 일, 중, 양식 가리지 않는다. 차림이 다르고, 사용되는 양념이 다르며, 혀에 감기는 맛 또한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도 뭐니 뭐니 해도 우리의 밥 만한 것이 없다. 갓 나온 햅쌀로 지은 따끈한 밥맛은 별다른 반찬이 없어도 맛있는 식사가 가능하다. 

밥을 먹지 않고는 생명을 유지하기가 어렵다. 맛있는 밥은 우리들의 삶의 원동력이 되어준다. 어차피 우리들은 밥을 먹지 않으면 살 수 없으니 기왕이면 맛과 질을 따지지 않을 수 없다. 어렸을 적, 보리 꽁다리 밥이라도 원 없이 먹었으면 좋겠다 생각한 적도 많았지만, 그래도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하얀 쌀밥을 먹는 게 희망이었고, 간절한 바람이기도 했잖은가. 

내 유년 시절은 거의 외갓집에 보냈다. 외갓집은 농사를 많이 지어서 머슴들만 해도 세 명이나 되었고, 외삼촌, 이모님들이 많아 대가족이었다. 식구들이 많으니 부족한 쌀과 보리의 양을 채우기 위해 무를 채 썰어 얹은 무밥을 많이 지었다. 그런데 이 무밥은 곰삭은 토하(土蝦)젓과 만나면 환상의 맛이 된다. 그리고 이 맛난 토하젓을 생각하면 물안개 낀 저수지 또랑에서 토하를 잡기 위해 그물질하던 이모님들의 모습이 떠오르곤 한다. 지금도 고향을 다녀오는 내 자동차에는 어김없이 토하젓을 담은 상자가 실려있거나, 고향 친척들이 보내온 토하젓이 우리 집 냉장고에서 끈길 날이 없다. 

그런데 참 재밌는 게 있다. 이 맛있는 밥맛이 또 다른 용도로 쓰여지고 있다. ‘밥맛없는 사람’. 언어적 유희인지는 모르나 사람을 콕 찝어 맛으로 표현한다. 싱거운 사람, 매운 사람, 구수한 사람, 밥맛 없는 사람. 우리나라 민초(民草)들의 언어적 감성이 돋보이는 표현들이다.

그 중 가장 돋보이는 표현이 ‘저 사람 정말 밥맛이야’이다. 이런 지적을 가장 많이 듣는 사람들은 정치하는 사람들이 아닌가 싶다. 국가와 국민들을 위한다고 말하지만, 자신이 국회에 들어가야만 된다는 말들의 잔치이다. 그러나 이들이 하는 말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뻔뻔하게도 자기 논에 물 대는 말들이다. 거짓말도 서슴치 않고, 오히려 왜곡하고, 선동한다. 이번 총선 ‘정말, 밥맛 없는 사람’들을 골라내는 일을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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