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북출신 민갑룡 전 경찰청장
“공동체 위해 일하겠다는 약속 지키게 돼 기뻐”

지난 7월 퇴임한 신북출신 민갑룡 전 경찰청장이 벌금 미납으로 교도소에 갇힐 위기에 놓인 시민들을 구하기 위한 ‘장발장은행’ 대출심사위원으로 변신했다.

장발장은행은 ‘가난이 죄’가 되는 세상을 바꾸기 위해 인권연대가 운영하는 사업으로, 빅토르 위고의 소설 레미제라블 주인공 장발장에서 이름을 따왔다.

2015년 2월 출범한 장발장은행은 지금까지 874명에게 15억4천500여만원을 대출해줘 새 삶을 꾸릴 수 있도록 도와줬다.

민 전 청장은 지난 9월 8일 9명의 심사위원과 함께 장발장은행 대출심사위원으로 참석해 10명의 ‘현대판 장발장’에게 2천330만원을 대출해주기로 결정했다. 대출은 신용 조회 없이 무담보, 무이자로 이뤄진다.

민 전 청장은 “경찰청장으로 퇴임하면서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공동체를 위해 일하겠다고 약속했다”며 “그 약속을 지키기에 가장 적당한 게 장발장은행에서 일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32년간 경찰 생활을 마치고 지난 7월 23일 퇴임한 민 전 청장은 “부족한 제가 주어진 책무를 끝까지 수행할 수 있었던 것은 여러분 덕분”이라며 동료 경찰관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민 청장은 경찰청에서 열린 퇴임식에서 이임사를 통해 “운명처럼 경찰에 투신해 가치 있는 일을 마음껏 할 수 있어 행복했던 경찰 인생이었다”고 소회를 밝혔다.

21대 경찰청장인 민 청장은 신북에서 태어나 신북중·고를 거쳐 1984년 경찰대학에 4기로 입학했고 1988년 경위로 임용됐다. 기획 분야에서 능력을 인정받아 경찰청 혁신기획단, 경찰청 수사구조개혁팀 등 태스크포스(TF) 부서를 거치며 승승장구했다. 2018년 7월 경찰청장에 취임해 2년의 임기를 모두 채웠다. 임기를 마치고 퇴직한 경찰청장은 이택순 전 청장과 강신명 전 청장에 이어 민 청장이 세 번째다. 전임자인 이철성 전 청장은 임기를 2개월 앞두고 만 60세 정년이 차 경찰청장으로는 처음 정년 퇴임했다.

경찰의 오랜 과제였던 수사권 조정안이 지난 1월 국회를 통과한 것은 자타공인 민 청장의 최대 성과로 꼽힌다. 수사권 조정안은 경찰에 1차 수사 종결권 부여, 검사의 직접 수사 범위 제한 등을 골자로 한다.

민 전 청장은 “‘경찰이 곧 시민이고 시민이 곧 경찰’인 만큼 저는 다시 시민 경찰로 돌아가 우리 사회의 정의로움과 공동체의 평화, 질서를 지키는 데 미력이나마 보태겠다”고 밝혔다.

퇴임식에는 민 청장의 부인과 경찰위원회 위원장인 박정훈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참석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축하난을 보냈다. 축하난에는 ‘영예로운 퇴임을 축하합니다. 대통령 문재인’이라는 메시지가 적혔다.

한편 민 전 청장은 경찰총수 최초로 지난해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제71주년 제주4·3 광화문 추념식’에 참석해 공식 사과 입장을 표명, 제주4·3 희생자 유족을 위로하고 화해와 상생의 기틀을 마련하는 데 기여한 점을 인정받아 명예 제주도민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제주도는 최근 제주도의회에 더불어민주당 우원식 의원과 민갑룡 전 경찰청장, 전 축구 해설위원인 신문선 명지대 교수를 ‘2020년 3분기 명예도민증 수여 대상자 동의안’을 제출했다. 동의안은 9월 16일부터 25일까지 열리는 제387회 도의회 임시회에 상정돼 소관 상임위원회인 행정자치위원회 심의와 본회의 표결 절차를 거치게 된다. 명예 제주도민으로 위촉되면 법령이나 다른 조례 등에서 제한을 두지 않는 한 제주도의 재산과 공공시설을 이용할 수 있고, 제주도민과 균등한 행정 혜택을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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