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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출산의 아름다운 풍광을 한시로 풀어내

기사승인 2020.07.10  13:5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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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요 관문에 암각 글씨 새겨 길잡이 역할

월출산은 영암의 상징이며 영암사람들의 정기(精氣)이다. 월출산국립공원 지정 30주년을 지나면서 월출산을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는 사업이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그 주요사업은 왕인박사·도선국사·최지몽·김시습·정약용 등 명사들이 월출산을 오르던 길이라는 의미에서 붙여진 ‘월출산 명사 탐방로’ 개설과 월출산 100리 둘레길 생태경관 조성사업이다.

월출산을 활용하기 위해서는 월출산을 알아야 한다. 월출산은 영산(靈山)이다. 가볍게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 오랜 시간과 교감을 거쳐 월출산이 자신을 열어 보여줄 때 비로소 월출산을 알게 된다. 오직 사랑을 통해 가능하다. 월출산 자락에서 태어나 월출산의 품을 드나들며 그 사랑을 고백한 사람들이 있다.
   
■ 송은(松隱) 하학천(河鶴天) 선생

명사 탐방로의 출발선인 월출산 큰골 입구에는 ‘大洞門’(대동문)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바위가 있다. ‘큰골로 들어가는 문’이라는 표지석이다. 힘차고 단정한 글씨체로 ‘大洞門’이라 암각된 글씨 옆에는 ‘松隱 河鶴天’이라는 이름이 새겨져 있다.

큰골 아래 녹암마을에서 태어나 큰골을 드나들며 80여 년을 살아온 조동길 선생은 여름에는 더위를 식히려고 많은 사람들이 여기를 찾았고, 옛적에 용암사를 비롯한 암자가 12개나 있어서 이곳에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대동문이라 새겨진 곳으로부터 조금 떨어진 계곡의 바위에는 이곳의 풍광을 노래한 한시가 새겨져 있다. 하학천 선생이 새겨 놓은 큰골 노래이다.

‘石色玉氣 水紋雲性’(돌의 색은 옥의 기운이요, 물의 무늬는 구름과 같다)

시인의 마음에 투영된 풍광은 신선들이 거처할 만큼 깨끗하고 글을 썼던 당시 월출산 큰골의 아름다움이 눈에 선하다. 특히 월출산을 ‘氣’로 표현한 의미 있는 문장이다.

월출산 자락 기찬랜드가 들어선 작은골에는 용추폭포(용치폭포)가 있다. 가야금 산조 창시자 김창조 선생이 드나들었던 이곳은 과거에 풍류를 즐기는 선비들이 즐겨 찾았고, 여름에는 하학천 선생도 자식들을 데리고 이곳에 와 자연을 즐기며 더위를 식혔다. 하학천 선생은 이곳 용추폭포 바위에도 ‘山容明淨 水色溰鮮’(산의 용모는 해맑고, 물의 색은 희고 곱다)라는 내용의 시를 새겨 놓았다. 이 문구는 월출산 계곡의 용추폭포 소리와 함께 영롱한 가야금 소리와 어우러져 세상 욕심에 찌든 우리의 마음을 씻어주는 것만 같다. 이것이 월출산이다.

하학천 선생의 손길은 산성대에도 남아 있다. 산성대는 옛날 군사적 요충지로 국가적 위기에 봉화를 올리던 곳이다. 입구에 ‘月出第一關’이라는 암각 글씨가 송은(松隱)이라는 필명과 함께 새겨져 있다.

월출산을 품고 살아온 영암인 하학천 선생은 1889년 덕진면 영등리에서 태어났다. 영암읍에서 살면서 열무정과 수성사에 오래 출입했으며, 1957년 수성사에 다녀오다 자택이 있는 대신리 입구에서 쓰러져 타계했다. 9남매 중의 7남인 하헌복 씨의 말에 의하면 평소 글씨나 그림 그리는 분들이 집에 머무르며 아버지와 교류했고, 집에 한문책이 몇 박스나 있었다고 한다. 하학천 선생은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영암읍교회 대표인 영수(領袖)를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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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수집 책자 발간·사진전 ‘고군분투’

■ 박 철 사진작가의 월출산 사랑
 
1953년 신북에서 사진관을 운영하는 박병갑 씨의 장남으로 태어난 박철 작가는 문학가를 꿈꾸며 지평선 끝에 우뚝 솟은 월출산을 바라보며 살았다.

그리고 고등학교 2학년 때 카메라 들고 친구들과 월출산 등반을 한 것을 계기로 월출산에 빠져 들었다.

1981년 광주 남도문화예술회관에서 도립공원 월출산 사진전을 연 것을 시작으로 국회에서 월출산국립공원사진전을 열 때까지 28년간 서울, 모스크바, 대구, 대전, 광주, 영암 등지를 돌며 월출산 홍보를 했다.

월출산의 자료를 수집하고 정리하여 수차례 책자를 발간한 박철 작가는 백두산과 금강산을 촬영하여 월출산과 함께 사진전을 열면서 월출산의 품격을 높이고자 부단히 노력했다. 그러던 중 2009년 1월 31일, 영암의 지명 유래지인 월출산의 구정봉이 사람의 얼굴로 발현된 것을 촬영하여 언론에 보도했다.

그 이후로 홀연히 나타난 구정봉 큰바위얼굴이 ‘신령스러운 바위 곧 영암(靈巖)’임을 인식하고, 이를 알리고 세계명소로 가꾸기 위해 11년째 마음을 쏟고 있다. 박철 작가의 활동을 보면 박 작가가 월출산을 붙잡고 있는 것이 아니라 월출산이 박 작가를 붙잡고 있다는 느낌마저 든다. 사람의 생각을 초월한 뜻이 있지 않고서야 홀로 맞서야 하는 온갖 시련을 견디면서 어떻게 그 일이 지속될 수 있을까.

월출산은 자연이라기보다는 하늘이 빚어놓은 조각품이다. 유사 이래로 많은 사람들이 월출산에 대한 감동과 사랑 고백을 남겼다. 그 중에 중요한 것은 월출산이 갖고 있는 월출산의 정체성을 구현하는 일이다. 월출산과 영암의 역사를 몸으로 체험한 사람들은 오랜 경륜 속에 자신이 살아온 곳의 정체성을 품고 있다. 한마디로 월출산과 영암의 살아있는 백과사전이다. 이들이 세상을 뜨기 전에 영암을 위해 보배로운 지혜를 펼칠 수 있도록 소중한 기회가 주어지기 바란다.

문배근 기자 mbg1121@hanmail.net

<저작권자 © 영암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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