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중 재  덕진면 노송리 송외마을生 전 광주시교육청 장학사 한국전쟁피해자유족 영암군회장 수필가

화순 컨트리클럽으로 골프를 치러 갔다. 25년 전에 개장한 곳이다. 역사를 자랑하는 골프장이라서 그런지 입구에서부터 철쭉꽃이 양편으로 나란히 잘 정돈돼 환하게 웃으며 우리를 반겼다. 양탄자를 깔아 놓은 듯 깔끔한 잔디, 코스 주위를 둘러 바람을 막아주는 수려한 수목들의 배치는 사람에게 일체감을 안겨 주는 듯, 오르내림이 어울려 지루하지 않는 천혜의 코스, 4계절 아름답고 신비로운 변화의 27홀, 쾌적하고 편안히 라운딩을 즐길 수 있도록 설계된 최상의 요람이랄까. 코로나19 바이러스 무균지역임이 틀림없을 것 같다.

오늘은 우리 부부가 골프 머리 올린 지, 1년이 되는 날이다. 그날을 기념해 그동안 쌓아온 기량을 점검해 본다며 자식들이 숙제 검사하는 선생님처럼 나섰다. 작년 그때 이후, 가을까지 매주 서너 번, 순창 파3 골프장(9홀 2시간 소요)에서 부지런히 연습했으나 코로나19 때문에 몇 달 동안 쉬었다. 그런데 다시 기량을 점검받으려니 부담이 갔으나 자식들인데 어떠랴, 한편, 이 나이에 자식들과 함께 어울려 노는 것만으로도 행복하지 않는가?

전반 9홀은 45타(9타 오버), 두 번째의 파4 홀에서 버디를(3타에 홀인) 했다. 드라이버가 잘 맞아 2번째 공이 그린에 올라 퍼팅 한 번, 땡그랑하고 경쾌한 음을 남겼다. 내 구력에 기적이란다.

“코로나 위험 속에서도 연습장을 날마다 다니더니만 일냈군요.” “뭐, 그래 당신은 순창 3번 홀에서 홀인원까지 했으면서…”

후반 들기 전, 그늘 집에서 시원한 맥주 두어 잔은 간장까지 서늘하게 해 기분이 아주 상쾌했다. 이 맛과 즐거움을 무엇에 비기랴!

후반전 9홀에서는 긴장이 풀리고 술기운 탓이었던지 52타(16타 오버), 저조한 성적을 내고 말았다. 그러나 맘껏 웃고, 부자간, 모녀간, 서로 가르치고 배우며, 큰 실수 없이 자기 기량을 맘껏 발휘해 연휴 서막을 장식했다. 캐디가 나에겐 초보라고 ‘머리를 잡아 두어라. 공을 정확히 맞춰라’ 세세한 레슨을 겸해 주니 나는 좋았는데, 자식들은 집중력을 떨어뜨려 점수가 나지 않았다고 투덜거렸다. 나도 좀더 욕심을 버리고 긴장하여 정석 스윙을 했더라면 이렇게 무너지지는 않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은 남았으나 1년 전보다 10여 타를 줄였지 않았는가?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무지개 같은 것.

이틀 후, 딸들과 함께 함평L CC로 출발했다. 골프장에 가까워지니 빗방울이 떨어졌다. 옷까지 얇게 입고 와 비 맞으면 감기 걸리겠다고 입장료를 환불받아 실내골프장으로 가기로 했다. 딸들에게 그동안 연습한 결과를 또, 테스트 받았다. 몇 번밖에 가보지 않는 실내골프장은 적응력이 더욱 떨어져 필드에서보다 점수가 나지 않았다. 프로 딸이 테스트 결과를 강평했다. 기본자세가 흐트러지고 리듬감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시범을 보이고 연습을 시켰다. 큰딸은 조교 역을 맡아 내 몸을 바로 잡아 주었다. 가르쳐 준대로 쳐보니 공 맞는 소리부터 경쾌했다. 비거리도 월등히 좋아졌다. “아! 이런 것이군!”

어제 배운 것을 실천해보고자 이른 아침 골프연습장으로 달렸다. 배운대로 실행해보니 흥이 났다. 50분이 금방 지나간다. 내 스스로에게 만족했다. 참 신기하였다. 단숨에 될 리는 없겠지만 내가 생각해봐도 며칠 전과는 확연히 달라진 것 같다. 연습을 하고 와서 딸들과 점심을 먹는데, 아내가 묻는다. “프로 딸이 가르쳐 준대로 쳐보니 잘 되던가요?” “그게 그리 쉽겠는가만 조금 좋아진 기분은 들어”

명쾌한 대답이 나오지 않는 것을 눈치 챈 아내는 딸들에게 말했다. “너희들 몇 시에 서울로 올라갈 거냐? 아빠는 매사에 조금만 부족해도 잠을 못 주무시는 성격이니 점심 후, 실내연습장에 가서 한 번 더 정확히 가르쳐 드리는 것이 어떨까?”

미국 골프대학까지 유학을 다녀와 골프레슨을 하고 있는 딸의 실력을 골프 시작할 때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러나 오늘 4시간 동안 큰딸과 작은딸이 번갈아가며 지도한 실기능력은 대단했다. 골프의 꽃이라는 나의 드라이브 기술이 월등히 달라졌기 때문이다. 공을 정타로 맞추니 130여 m에 불과했던 비거리가 최장 210여 m를 넘기니…

작은딸에게는 늘 미안 생각이 든다. 대학 다닐 적부터 보통의 범주를 넘어나니 탐탁하게 여겨 주지 않아 아빠의 호응 없이 프로골퍼를 걸머쥐고 미국 유학길까지 오를 때 얼마나 힘들었을까? 지금 생각해보면 미안한 생각에 가슴이 아린다. 부모로서 뒷바라지가 부족했던 지난날들, 경제적 자립까지 훌륭하게 했으니, 대견스럽고 자랑스러운 내 딸, 모진 세파를 이겨내고 용감히 서울 강북의 고급 APT에서 살고 있는 내 효녀 딸.

나는 작은 딸을 우리 집의 ‘콜럼버스’라고 칭한다. 신대륙을 발견한 그의 달걀 세우는 일화에 작은딸을 비교하곤 한다. 뾰쪽한 부분을 깨서 알맹이를 빼고 달걀을 세우는 것을 보고 나도 그런 것은 할 수 있겠다고 했겠으나 깨서 세우기 전에 그런 생각을 하게 된 창의성을 높이 산 것이 아닌가.

내 딸은 우리 가정의 고정관념을 과감히 깨트렸다. ‘잘난 딸 하나 열 아들 부럽지 않다’는 말이 헛말은 아닌 듯, 2년 전만 해도 상상못할 우리 집안의 풍경이지 싶다. 칠십을 넘나드는 우리 부부를 골프 연습에 매진하게 만들었고, 골프 이야기로 꽃 피우는 가족 간, 사랑의 대화는 작은딸의 덕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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