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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종 내동리 쌍무덤 금동관편 출토 의미

기사승인 2020.04.24  13:5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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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대 마한왕국 실체 증명…영산강유역 문화교류·융합 중심지 확인
내동리 쌍무덤 비롯 시종 일대 대형 고분군 국가사적지로 지정해야

반남과 시종이 하나의 동일한 정치체

시종면 내동리 1호분(일명 쌍고분)에서 국보 제295호인 나주 신촌리 금동관과 매우 흡사한 금동관(편)이 출토돼 고대 사학계의 관심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쌍고분은 4기로 되어 있는데 그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고분이 1호분이다. 길이 56m, 너비 33.6m, 높이 4∼7m의 제형(梯形)으로 된 대형 고분이다. 이 고분은 일제강점기에 대부분 도굴되었으나 아직도 분구 주위에서 많은 구슬이 수습되고 있다. 쌍무덤은 목포대 박물관이 1986년 지표조사를 했고, 2000년 전남대 박물관이 측량했다. 전라남도 산하 전남문화재연구소가 2018년 5월 1호분을 시굴 조사를 한 후, 2019년 4월부터 본격적인 발굴조사를 하고 있다. 그러다 7월에는 고분의 상부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비록 도굴된 고분이었지만, 1호 석곽에서 광구소호, 발형토기, 단경호 및 다양한 구슬(곡옥, 다면옥, 구슬옥)과 금제이식이 출토되고, 2호 석곽에서는 유공광구소호, 직구호를 비롯하여 다량의 구슬(곡옥, 채색옥, 금박유리옥)과 금제이식 4점, 영락(瓔珞, 구슬 목걸이) 1점이 출토돼 학계를 놀라게 했다.

이 가운데 2호 석곽에서 금동관 대륜부 상부 장식에 사용된 유리구슬과 영락 등 금동관 조각 편이 다량으로 출토되어 관심을 끌었다. 장식용 유리구슬은 구슬의 3분의 2 정도 하단부에 금동으로 도금하여 대륜부에 해당하는 상부 부분을 장식하기 위해 사용한 흔적이 확인됐다. 이는 나주 신촌리 9호분 금동관에 장식된 유리구슬과 매우 유사한 양상을 보여주었다. 비록, 신촌리 9호분의 금동관의 극히 일부인 영락 1점을 가지고 신촌리 9호분과 동일한 성격을 지닌 금동관이 내동리 1호분에도 있지 않을까 하는 추측을 갖게 했다. 그렇다면 반남과 시종이 하나의 동일한 정치체를 구축한 강력한 왕국을 형성했음이 확인되기 때문이다.
 
 

신촌리 9호분 피장자와 같은 지위

그동안 신촌리 9호분 금동관은 백제 왕실이 이 지역의 마한 세력을 포용하는 과정에서 사여한 위세품이라고 살폈지만, 필자를 비롯한 적지 않은 연구자들이 반남 지역에 있는 마한 정치 세력이 직접 제작한 왕관이라고 주장해왔다. 그것은 금동관의 형식이 백제 계통이 아니라 가야와 왜 및 토착적 요소가 결합된 마한 고유의 양식을 띠고 있다는 점에서 분명해진다. 곧 마한왕국의 국왕이 사용한 왕관인 것이다. 복암리 정촌 고분에서 출토된 금동신발과 일본에서 수입된 금송(金松)으로 만든 관(棺) 등도 이 지역 국왕의 강력한 힘을 보여준다.

결국 시종 내동리 쌍무덤에서 신촌리 고분과 동일한 형식의 금동관 파편이 나왔다는 것은, 이 고분의 피장자도 신촌리 9호분의 피장자와 같은 지위에 있었음을 말해준다. 영산 지중해 지역을 장악한 마한 대국의 힘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곧 필자가 줄기차게 주장했던 시종과 반남 일대에서 세력을 형성했던 ‘내비리국’ 왕국의 존재를 입증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흥분을 감출 수가 없다.

그러나 지난해 7월 중간보고회 때 ‘영락’ 1점을 가지고 그러한 추정을 하는 데 망설임이 없지 않았다. 김영록 전라남도지사·전동평 영암군수 등이 참여한 보고회에서도 약간 흥분되면서도 불안한 느낌이 든 것은 참석자들의 한결같은 마음이었다. 그때 유인학 마한촌건립준비위원장과 금동관이 도굴되었다면 일본 어디에 있을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쌍무덤의 하단에 묻혀 있지 않을까 짐작했다. 이 자리에서 전동평 군수는 김영록 전남지사에게 추가 발굴 지원비 3억원을 요청하여 발굴 작업이 계속되었다. 그러다 이번에 보다 확실한 금동관의 존재를 알려주는 편이 출토된 것이다. 전동평 군수의 기쁨이 누구보다 크리라 생각된다.

이번에 출토된 금동관(편)은 금동대관 둥근 테의 앞쪽과 양 측면에 나뭇가지 모양의 세움 장식을 세운 형태로, 줄기 위에 커다란 꽃봉오리를 만들고 그 좌·우 가지에 2개의 꽃봉오리를 비스듬하게 배치했다. 그 아래 2단의 가지를 좌우대칭으로 뻗게 했고, 아래 두 번째의 가지는 매우 작게 표현됐다. 꽃봉오리 중앙에는 연꽃무늬로 표현했고, 최상단에는 유리 구슬을 장식했다.

이러한 양식은 신촌리 9호분 금동관과 너무나 흡사하다. 따라서 지난해 고분 상단에서 나온 영락과 이번에 나온 금동관 가지 모양은 신촌리 9호분과 같은 모양이 분명하다. 아마 발굴이 고분의 하층부까지 완전히 이루어지면 금동관의 본체가 드러나지 않을까 확신한다.

아직 정식 발굴보고서가 나와 있지 않아 결론 내리기에는 성급하나 이번 내동리 쌍무덤의 피장자는 신촌리 9호분의 피장자와 같은 성격을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영산 지중해 왕국의 국왕임을 분명히 말해주고 있다.

영산강 일대는 문화교류·융합의 중심지

한편 이번 발굴에서도 금동관 이외에 일본 고분에서 출토된 다량의 동물 모양 토기(하니와) 등이 지난해에 이어 무덤 주변 도랑(주구)에서 나왔다. 이곳 영산 지중해 지역에서 출토된 하니와를 보면 일본 현지에서 제작된 것을 수입한 것이 아니라 이 지역에서 제작된 것이 대부분이다. 역시 2019년 함평 금산리 방대형 고분에서도 인물 형상을 한 하니와가 나와 학계의 주목을 받았지만, 일본과의 교류 과정에 유입되어 고유의 문화로 자리매김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말하자면 방사형과 원형의 토괴(土塊) 구조를 동시에 응용하여 사용한 인근의 옥야리 방대형 고분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영산 지중해를 통해 유입된 문화가 토착문화와 용해되어 고유한 문화로 창조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처럼 이번 내동리 쌍무덤은 이 지역에 강력한 마한 왕국이 존재했고, 영산 지중해 일대가 문화의 교류·융합의 중심지였음을 거듭 확인해 주고 있다. 결국, 영산강 유역의 강력한 마한 왕국이 한국 고대사의 원형이라는 사실을 이번 쌍무덤의 유물들은 거듭 말해주고 있다.

따라서 내동리 쌍무덤을 비롯하여 옥야리 방대형 고분 등 시종 일대의 대형 고분군을 국가사적지로 지정하려는 영암군의 의도는 시의적절하다.

다만 이번 발굴을 계기로 금동관의 주인을 ‘마한 왕국의 국왕’이 아닌 ‘마한 사회의 최고 권력층’‘마한 시대 최상위층’이란 표현을 쓰지 않았으면 한다. 이는 이 지역에 성립된 마한 왕국의 실체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의도가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글=박해현(문학박사·초당대 교양교직학부 초빙교수)

박해현 yasinmoon@hanmail.net

<저작권자 © 영암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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