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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한촌’ 건립은 마한공원 내에 조성돼야

기사승인 2019.09.06  13:2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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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점 수

남해신사제례보존위원장

영산강 고대 문화사업으로 추진되고 있는 ‘마한촌’ 조성사업이 마한의 심장부인 시종 ‘마한공원’에 응당 조성되어야 한다.

한반도에 철기문화가 본격적으로 유입되던 기원전 4세기경 한반도의 중남부에 마한 54 연맹왕국이 성립되었다. 청동기시대 고인돌 축조 세력들이 마한 54 왕국으로 발전해 가는 과정에서 그 중심지가 영산강 유역이었다. 마한시대로 들어오면서 농업 생산력이 늘어나고, 고인돌 대신 널 무덤이나 옹관 무덤이 나타났다. 영산강 유역에 형성된 왕국을 중심으로 발달한 마한 왕국이 4세기 후반 백제 근초고왕 때에 백제에 병합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영산강 유역의 마한 왕국은 4세기에 사라진 왕국이 아니라 6세기 중엽까지 마한 연맹체를 형성하여 독자적 발전을 거듭하고 있었다. 이를 입증하는 증거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최근 내동리 쌍무덤에서 발굴된 금동관 파편 유물은 반남 신촌리 9호분과 같은 형태로 이 무덤 피장자가 고대 마한왕국의 국왕으로 추정되고 있다. 시기적으로 보아 신촌리 9호분 출토 왕관보다 이른 시기의 것으로 추정되고 있어 시종지역에 있는 마한 왕국이 영산 지중해 왕국 가운데 가장 일찍 형성되었음을 알수 있다. 시종지역은 영산 지중해를 중심으로 중국·백제·왜·가야·신라와 교류를 하며 고유의 문화를 발전시킨 마한의 심장부였다.

남해신사가 있는 남해포는 인근 상대포와 더불어 마한 시대부터 국제무역이 활발히 전개된 유명한 항구였다. 이곳에는 마한 시대부터 국제무역에 종사하는 각국 선박들의 무사항해를 기원하는 해신당이 자리하고 있다. 이 신당은 고려시대에 가장 대표적인 해신 사당으로 발전하였다.

그와 관련된 다음과 같은 얘기가 있다. 1010년 거란의 공격을 피해 이곳으로 피난을 온 고려 현종 임금의 꿈에 백발의 수신(水神)이 나타나 빨리 피신하라고 현몽하여 피신하였다는 얘기가 전하고 있다. 이에 현종은 꿈속의 백발 수신을 위해 당을 짓고 6개군(나주·영암·함평·영광·강진·해남) 원님들과 나주 목사에서 제사를 모시라고 명을 하여 향과 축문을 내려 지금까지 봄·가을에 남해신사에서 제를 모시고 있다. 마한 시대부터 있었던 해신당을 현종 때 국가에서 후원하는 신사로 승격시켰다고 본다. 이처럼 남해포는 마한의 역사와 전승이 남아있는 유서 깊은 곳이다.

또한 영산강 하구의 둑이 축조되기 이전인 1970~80년까지만 하더라도 목선·철선이 목포·영산포·나주까지 왕래할 때 이곳 시종지역은 농·수산물의 물류센터 중심지였으며, 목포 등으로 유학간 학생과 주민들의 여행객들이 가장 많이 오르내렸던 항구로 번창한 곳이다.

특히 임금님 수라상에 올리는 숭어와 어란도 많이 생산되어 이곳에 풍성한 어시장이 형성되기도 하였다.

마한공원이 위치한 시종 일대는 고대 마한의 심장부를 형성한 이래 현재에 이르기까지 풍요로운 문화를 형성하고 있는 곳이다. 이러한 역사적 스토리를 담고 있는 마한공원에 ‘마한촌’이 조성돼야 함은 당연하다.

오늘도 영산 지중해의 광활한 대지에서 우리들의 주식인 쌀이 생산되고 있고 오늘 역시 떠오른 태양이 마한공원을 비추고 있다.

김점수 @

<저작권자 © 영암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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