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석 주 덕진면 운암리生 전 농협중앙회 영암군지부장 전 영암군농협쌀조합법인 대표이사 농우바이오 이사·감사위원장

나는 주말농장 텃밭에 모종을 사서 심지 않고 직접 씨를 뿌려 가꾼다. 초기관리는 힘들지만 농사짓는 재미가 더 쏠쏠하다. 비록 서너 평 남짓 작은 땅이지만, 봄가을에 심는 종류는 족히 스무 가지가 넘는다.

과거 농민들은 대부분 종자를 자가 채종하여 이듬해 씨를 뿌렸다. 그러나 요즘 자가 채종은 찾아볼 수 없고 종자를 모두가 사서 쓴다. 자가 채종하여 씨를 심으면 품질이나 수확량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농사짓는 사람들은 상표만 보고 구입하는 종자가 국산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종자의 원산지가 외국인 경우가 더 많다.

현재 우리나라 종자업 등록업체는 1천490개에 이른다. 그러나 10인 이상 고용업체는 31개에 그친다. 지난 1997년 IMF 외환위기를 겪으며 대형 종자회사들은 대개 다국적 종자회사에 팔렸다. 그 과정에서 우리들이 오랜 기간 소중히 보관하고 있던 고유 토종종자가 송두리째 외국으로 넘어간 것이다. 토종종자는 새로운 품종을 개발하는데 없어서는 안 될 유전자원이다. 유전자원의 해외유출 곧 ‘종자주권 상실’을 뜻한다.

“세계는 지금 종자 전쟁”
품종등록을 마친 신품종들도 마찬가지였다. 실례로, ‘청양고추’는 1981년 제주 고추와 태국 고추를 교잡하여 만든 우수한 품종이었다. 고추 주산지인 청송의 ‘靑’자와 영양의 ‘陽’자를 따서  품종등록을 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미국 몬산토사의 특산고추로 둔갑하고 말았다. ‘청양고추’ 하나를 먹을 때마다 로열티를 내고 있는 실정이다.

지금 세계는 ‘종자전쟁’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전 세계 농작물 종자시장의 규모는 대략 40~50조원에 이른다. 세계 제1위 종자기업 몬산토사가 2017년에 13조원의 매출로 시장의 26%를 점유하고 있다. 2위 업체 듀퐁이 18%의 시장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다. 3위 업체는 중국의 캠차이나로, 2년 전에 스위스의 종묘회사 신젠타를 인수하면서 발전하고 있다. 이처럼 세계 종자시장 74%는 상위 10개 업체가 장악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30위권으로 겨우 6천만 달러의 미미한 실적이다. 농진청의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수입종자 로열티 지급액이 809억원이었지만, 이후에는 그 규모가 큰 폭으로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정부·기업·농업인 합심해야”

종자산업은 한두 해에 승부가 나는 산업이 아니다. ‘신의 선물’이라는 종자는 인류의 역사와 더불어 ‘자체 진화’에 의해 발전해왔다. 다행히 현대에 들어와 유전공학의 발달로 연구기간이 짧아지기는 하였지만, 여전히 10년 이상의 연구기간과 많은 투자가 뒤따라야 한다. 정부도 뒤늦게나마 종자산업 지원에 나서고 있다. 2012년부터 종자산업 개발을 위한 전략형 연구개발 사업(GSP:Golden Seed Project)을 추진하고 있다. 2021년까지 4천911억원을 투자하여 우리나라를 2억 불의 수출로 세계 15위의 종자수출국으로 육성할 계획이다. 자급률이 낮은 과수, 화훼, 채소 종자의 육성에 정책적인 지원이 시급하다.

또한 종자생산 기업들도 농민과 소비자의 욕구를 파악하고 해외시장의 흐름에 맞는 신품종을 개발해야 한다. 다행히 국내 1위 종자기업 농우바이오를 비롯한 몇몇 회사들이 연구개발에 많은 성과를 내고 있다. 그 기업들은 그동안 해외구매에 의존했던 고급품종 종자를 자체 개발하였다. 실례로, 종자 한 알에 1천원을 호가하는 파프리카와 1g(1,000알)에 20~30만원 하는 토마토 품종을 개발하여 수입 의존도를 낮추고 있다.

마지막으로, 농가의 각성도 필요하다. 우리 농민들은 국내에서 개발한 우수한 품질과 적정한 가격대의 종자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조건 외국 종자를 선호하는 타성에서 벗어나야 한다. 값비싼 외국 종자의 사용은 농가부담 가중과 국부의 해외유출을 늘릴 뿐 아니라 국내 종자산업 발전에도 저해요인이 된다.

우리나라 식량 자급률은 23%로 세계 최하위 수준의 국가다. 이러한 열악한 조건 속에서 종자마저 외국에 종속된다면 ‘종자는 총칼보다 무서운 무기’가 될 것이다. 이제라도 우리 종자는 우리 손으로 개발하고 지켜서 ‘종자주권 되찾기’에 힘을 합하자.
“종자바구니를 머슴에게 맡기면 논밭에 잡초가 무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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