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인 덕진면 금산마을 고등학교 36년 참교육자 제주양씨대종회 회장 법선당 원장

“학교 교육의 승리는 교실 안에 있다.”

미국의 시애틀 교육감을 지낸 John Stanford가 쓴 “Victory in our Schools"라는 책의 첫 부분에 나오는 말이다. 

그 동안 학교나 교육청 모두 교실수업 개선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지만 허사였다.

이는 교실수업 개선문제가 아니다.

교실에서 가르치고 배움이 어떻게 신나게 일어나느냐의 문제이다.

신이 나려면 흥미가 있어야 하고 왜 해야 하느냐의 문제가 공감되고 내면적으로 서로의 인정이 있어야 한다.

여전히 교실의 문은 닫혀있고 가르치는 자 따로 배우는 자 따로 진행만 될 뿐이다.

더구나 학교 관리자는 교실을 떠나버려 나날이 변하는 교실의 문화를 상상도 못하며 의례적인 지시감독으로만 일관하고 있다.

더구나 그들의 수업에 대한 전문성도 문제이다.

유능한 교육자가 승진이라는 미명으로 교실을 떠나 행정관리실로 옮기는 것을 축하하고 즐거워하는 것을 보며 애석한 마음으로 쳐다만 보고 있어야 하는가? 너나 나나 학교 교육의 승부처인 교실을 떠난다면 우리의 학생들은 누가 가르칠 것인가? 뒷일은 나도 모르겠다면서 신나게 가르치고 신나게 배워야 할 교실을 외면한다면 우리들의 학교 교육은 어디로 가야하나? 더구나 그래도 남아 교실을 굳건히 지키는 인내심 있는 교육자를 실패자로 아니면 무능한 자 취급을 해버리면 이 나라 학교 교육의 미래는 없다.

교실에서 수업하고 학생들과 부딪치고 다투어 보아야 그들의 내면을 엿볼 수 있다.

엄마 젖 먹고, 고추·된장·김치 먹고 살았던 기성세대가 분유 먹고, 치킨·햄버거·소세지·라면 먹고 자란 신세대들의 내면세계를 어떻게 안단 말인가? 그들의 내면세계를 알고 함께할 때만이 진정한 교육이 이루어지고, 다양하게 표출되는 학교폭력 등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우리들의 교실 아이들은 왜 공부해야 하고, 왜 살아야 하는지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

엄마아빠에 의해서 모두 해결되어 스스로 자신을 위해 살아보지 못했거나 아니면 정서적으로 가정 결손 때문에 방치되어 버린 내면적으로 외로운 아이들이다.

이들에게는 행복한 삶의 의미와 따뜻한 가정교육이 필요하다.

학교교육 이대로는 안 된다.

변해야 한다.

학생이 있는 교실로 진정한 교육자가 집중되어야 한다.

유능하고 우수한 존경받는 진정한 교육자가 교실의 떠나지 않게 하여야 한다.

모든 관리자도 교실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

어떻게 교육의 승부처인 교실 안을 들어가지도 못하면서 교육을 관리하고 경영한단 말인가? 교실안의 교육은 수업이다.

관리자도 적은 량이지만 수업을 맡아야 그 길을 바르게 찾아 갈 수 있다.

지금의 전문직이란 장학사·연구사는 전문직이 아니다.

행정조직일 따름이다.

교육의 본질이 있는 교실을 떠난 전문직은 있을 수 없다.

항시 변하는 유기체 속에서 흐름을 같이하고 파악하여야 변하는 교육의 장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므로 학교를 관리하는 분들도 교실에서 다소의 수업을 담당해야 진정한 교육 지원을 할 수 있다.

진정한 교육자가 교실을 떠나는 교육자들에게 무시당하는 시대는 지나야 한다.

학교 교육 살린다고 실질적으로 교육에 혼신을 다하며 무시받는 비참함 속에서도 학생들과 함께 교실에서 부딪치며 자랑스런 위대한 한국을 있게 하였던 진정한 교육자들이 보호되고 존경받아야만 다시 교육이 살아나고 학교문제는 해결된다.

학교의 주변사회와 학부모가 짓밟고 법망이 입건하고 목을 조이고 있는 현실에서 고개 떨어뜨린 교육자로 교육문제는 해결할 수 없다.

더구나 가정교육의 완전 상실시대가 되었다.

오늘과 내일을 꿈꾸며 살아가야 할 미래의 청소년들에게 희망을 주고 인정을 해주는 시스템이 되어야 한다.

동방예의지국을 이끌었던 사숙식 또는 도제식의 교육이 되살아나야 한다.

아니면 가정교육이 튼튼하게 되살아나야 하는데 우리 영암이라도 가정교육을 되살리는 길은 무엇일까? 고민해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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