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중순 초가을, 이른 아침 7시였다. 이날 서울 청량리역에는 강원도 가을 단풍여행을 위해 KTX를 타려는 남녀노소 관광객들이 시골 장터처럼 가득 메웠다. 이날 필자를 포함한 70대 초반 중학교 동창들이 청량리역에서 평창역까지 KTX를 타려고 모였다.

모두가 57년 전 소년소녀 시절의 중학교 2학년 수학여행 학생들처럼 마음이 설레는 들뜬 기분으로 가득했다.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을 앞두고 개설된 서울-강원도 KTX 선로가 개통된 후 평일은 물론 주말에는 더욱 많은 강원도 방문 여행객들로 항상 붐비고 있다.

이번 여행은 여행사가 마련한 ‘강원도 구석구석 1박 2일 별미 기차여행’이었다. 이 여행의 주인공들은 고향 군서면 구림에 있는 구림중학교 전신인 ‘군서고등공민학교 9회’ 졸업생들이다.

필자는 학산면 낭주중학교에 진학했다가 1학년 한 학기를 마치고 등록금을 내지 못해 중학교 과정을 가르치는 이 학교로 전학했다. 이 학교는 가난해서 정식 중학교를 못가고 등록금이 아주 저렴한 중학교 과정을 가르치는 학교다. 이 학교는 고등학교 입학자격 검정고시를 합격해야만 중학교 졸업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이 학교는 나중에 정식 구림중학교로 승격했다. 그러나 중학교로 승인되면서 이전 고등공민학교 졸업생들은 중학교 선배로서 인정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15년 이상의 전통을 가진 군서고등공민학교 동문들은 시험을 거쳐 상급학교에 진학해 우수한 인재들로 사회에 많이 배출되었다. 바로 이러한 과정을 거친 70대 초반의 졸업생들이 57년 전 중학교 2학년 학생의 기분으로 수학여행(?)을 가게 된 것이다. 이들 대부분은 가난을 극복하며 열심히 노력해 성공한 친구들이다.

고급 공무원, 대기업 임원, 언론사 고위간부와 교수, 사업가로 크게 성공한 각계각층의 인물들이 많다. 또 여성들도 교사와 공무원, 일반직 간부 등 직장과 가정주부로 성실하게 살아온 친구들이다.

청량리역에서 탄 KTX는 한 시간 남짓 달려 평창역에 도착했다. 기차 양쪽 창가에 펼쳐지는 강원도 산과 들에는 울긋불긋 가을 단풍들이 물들어 있었다. 들판은 노란색으로 색칠해져 정말 57년 전 소년소녀 시절로 돌아간 듯 기분이 매우 상쾌했다.

평창역에 도착하여 버스 편으로 오대산 월정사 절에 도착했다. 월정사에 들어가는 입구는 한국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월정사 전나무 숲길이 펼쳐져 맑은 공기를 들이마시며 걷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강원도의 유명한 절인 월정사를 돌아보면서 고향 영암의 도갑사 절이 떠올랐다.

군서고등공민학교 시절 우리들은 여름철이면 도갑사 주변의 잡초를 제거하는 풀베기 작업을 했다. 또 봄철과 가을철 농번기 때마다 모내기와 벼베기, 일손돕기에 나섰다. 지금 생각하면 15살 정도의 소년소녀들이 어린 나이에도 불평 하나없이 선생님이 시키는대로 농촌 일들을 도운 것은 너무도 착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들은 대관령 양떼목장을 거쳐 그동안 군사보호시설로 개방되지 않았던 아름다운 동해의 신비를 간직한 정동진 ‘바다부채길’을 관광했다. 정동진 썬크루즈 주차장에서 심곡항까지 약 3km가량 깎아지른 듯한 산 비탈길 아래 새로 만들어진 높고 낮은 철판 계단길을 걸었다. 맑고 깨끗한 공기와 바다냄새가 물씬 풍기는 해안 탐방로길은 숨을 헐떡이면서도 매우 상쾌한 기분을 느끼게 했다.

그후 피곤한 하루를 강원도의 신선한 생선회와 매운탕에 시원한 맥주와 소주로 달래며 첫날 밤을 맞았다. 이어서 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며 남녀 모두가 신나게 멋있는 시간을 보냈다. 여성들의 노래는 대부분 그동안 살아온 인생의 어려움을 노래로 표현해 놀랐다. 그러나 남성들이 신나는 흘러간 노래로 분위기를 바꾸어 다 함께 춤을 추며 흥을 돋았다.

이튿날 동양최대 신비의 동굴인 ‘삼척 환선굴’을 관광했다. 우리나라에도 세계적인 동굴의 아름다움이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기암괴석이 잘 어우러진 추암 촛대바위, 추암 해변관광, 묵호 어시장, 푸른 바다와 향긋한 커피향이 가득한 안목 커피거리, 에메랄드빛 안목해변을 걷는 길들이 모두 추억이 되었다.

우리나라도 외국보다 더 좋고 볼거리가 많은 광광지가 전국 곳곳에 많다는 사실을 널리 홍보해 외국인 관광객들을 유치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황태, 미역, 다시마, 청정해역의 상품도 선물로 좋았다.

인생은 멋있는 삶. 황혼의 남녀 동창생들의 이번 여행은 아주 특별한 가을여행으로 가슴 설레는 옛 추억을 되살리는 데 큰 활력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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