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호면 몽해리 전 목포시 교육장 전 전남교육청 장학관

늦게나마 소를 키우니 이렇게 삶이 편할 수가 없다.

니르바나(Nirbana), 열반(涅槃)이 이런 것일까. 지상 낙원이 따로 없다. 저승이 베개 밑이라더니 천당이 주머니 속이다.

옳소, 맞소, 졌소, 내가 키우는 소 세 마리다. 당신 생각이 옳소, 당신 말이 맞소, 당신에게 내가 졌소. 그 중에서도 졌소 맛이 제일이다. 졌소 덕에 아침마다 신선한 우유를 마신다. 울분의 젊은 날부터 은퇴해 하릴없이 여기저기 기웃거리기나 하고 다닌 최근까지, 난 아내에게 항상 너그럽지 못한 사람이었다. 아내의 잘못을 보면 무슨 대역 죄인이 저지른 죄목인 양, 지적하고 바로잡겠다고 안달했다. 그리하면 뭐한다고 항상 지도만 하려고 눈알을 부라렸으니, 젊은 날부터 열반에 들었던 고수들에게 내가 어떻게 비춰졌을까 생각하니 부끄럽다.

할애비에겐 모든 손자가 다 귀엽다. 잘난 손자는 잘난 대로 귀엽고, 못난 손자는 못난 대로 더 귀엽다. 그 이유가 어처구니없게도 자식으로 인해 가졌던 것과 같은 농도의 책임감이 없기 때문이란다. 책임감이 엷으니 욕심을 작게 하여 바라볼 수밖에 없고, 그러니 그 어린 천연스러운 모습이 황혼에 어찌 귀엽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아내에게 가졌던 젊은 날의 내 태도도 책임감 때문이었을까. 그런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면 정녕 아내에 대해 난 책임감을 버린 것일까. 그 책임감이란 정체가 무엇이었을까. 동물의 세계에서나 나타나는 소위 배타적 독점욕은 아니었을까. 그런데 지금은 그럴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라면, 세월에 바래버린 아내 모습 때문일까, 그것이 사실이라면 아내의 늙은 모습 때문에 측은지심이 돋아나고 지금은 다른 짐승들을 경계할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리라.

이유야 어찌됐건 소 세 마리를 키운 뒤로 집안 곳곳에 웃음이 많아졌고, 내 마음이 편해졌다. 마치 무겁게 들고 다녔던 소풍날의 도시락을 다 까먹어버린 유년 시절의 나처럼, 든 것이 없으니 손놀림이 자유롭고, 넘어질 것 같으면 얼른 빈손으로 무언가를 붙잡을 수 있으니 몸도 마음도 편안해졌다.

이렇게 좋은 것을 왜 난 진즉 못했을까. 젊은 날부터 소를 키우는 고수들을 볼 때면 왜 바보처럼 대했을까. 인생도처(人生到處)에 유상수(有上手)인데 상수를 상수로 보지 못하고 하수로 대했으니 부끄럽고 또 부끄럽고, 죄송하고 또 죄송하다. 나이 일흔에 가까워서야 세상이 바늘귀만큼 보이기 시작한다.

그 동안 저지른 내 잘못, 아내는 분명 용서해 주리라.

태풍이 쓸고 간 여름의 끝자락 너머 붉은 노을이 처연하게 서산을 비추고 있다. 아니 소 잘 키우는 것 명심하고 또 명심하라고 모든 것 다 떨어진 내게 훈계하고 있다. 그래야 국밥이라도 맘 편하게 얻어먹을 수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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