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누구이고, 어떻게 사는 게 올바른 삶인지 고민해볼 틈도 없이, 이웃과의 경쟁에서 이겨야 하는 우리의 일상에서, 탈출을 꿈꾸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실행에 옮기기는 쉽지 않다. 그런데 주역을 제대로 읽으면 과감히 다른 삶을 선택할 수 있다고 한다. 왜냐하면 세상을 내다볼 수 있어 ‘내 방식대로’ 사는 행복을 설계할 수 있기 때문이란다.
 
정말 그럴 수 있는지? 최영진ㆍ이기동이 말하는 ‘주역을 읽어야 할 이유’를 따라 가보자.

우리가 사는 세상은 갈등, 대립, 대결, 투쟁 등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사건들의 연속이다. 그것은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구조적 모순 때문이다. 이 같은 모순은 동양의 가족 공동체적 윤리와 서양의 개인 중심의 윤리라는 이질적 규범이 공존하면서 가치관 혼란이 증폭된데 그 원인이 있다할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인류가 직면한 위기도 바로 국가 간의 정치ㆍ경제적 갈등, 인종과 종교 간의 분쟁으로부터 야기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갈등의 근본 원인은 ‘가치의 불균등 분배’로 진단된다. 이것이 계층 간 대립 의식을 야기하고 양극화시켜 결국은 폭력적 갈등으로 번진다.
 
이토록 절박한 과제인 ‘갈등’의 극복을 비서구적 이데올로기에서 찾아야 한다면, 이는 ‘주역’의 음양적 사고 구조에 대한 탐색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명확히 알 수 있다. 20세기 산업 문명이 야기한 전 지구적 생태계 위기는 더 이상 환경론자나 미래학자의 경고가 아니다. 그것은 이미 우리 앞에 다가와 있는 현실 문제이다. 최근 연구보고에 따르면 자연의 고갈, 자원의 편재, 환경오염 등에 의한 생태계 파괴는 인류 생존 자체를 위협하는 수준까지 이르렀다고 한다. 이러한 생태계 위기는 자연 조작 기술이 향상됨에 따라 인간이 자신의 끝없는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자연과 생태계를 일방적으로 착취하여 마침내 생태계의 자기방어 기능(자정 기능)이 무력해지면서 생겼다.

과학사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현대과학 기술의 모태가 된 서구의 기계론적 세계관의 뿌리는 ‘힘으로써의 지식’을 강조한 베이컨의 근대적 패러다임, 자연의 비신격화와 동일한 맥락에서 정신과 물질을 분리시킨 데카르트의 이원론, 그리고 인간중심적인 성서의 자연관이다. 현대과학 기술문명이 야기한 생태계 위기의 뿌리가 바로 이와 같이 자연의 본질에 대한 그릇된 시각, 즉 잘못된 자연관이라고 한다면, 위기 극복은 사회ㆍ경제적 접근이 이나 과학 기술적 접근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우리가 사서오경(四書五經)이라고 부르는 동양고전 가운데 자연에 관해 풍부한 견해를 담고 있는 책이 바로 주역이다. 논어, 맹자 등은 주로 사회적 문제의식으로부터 출발하여 인간의 심성에서 그 해결방안을 탐색하였으나, 주역의 기본적 구성요소인 8괘가 하늘, 땅, 물, 불 등 자연을 상징한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주역은 자연의 본질적 존재 양상과 그 관계성을 밝히고 그것을 인간사회에 적용하는 풍부한 자연관을 갖고 있다.

주역은 점서에서 출발한 책이며, 주역의 원형인 괘사, 효사 역시 점사다. 진시황이 이른바 ‘분서갱유’라 하여 불온한 사상서들을 불태웠을 때에 주역이 화를 모면한 것도 그 시대 사람들이 주역을 사상서가 아닌 실용적인 점서로 인식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점은 무엇인가? 인간의 지혜가 아직 발달하지 않았던 고대 중국에서는 기후, 지진, 일식 등 자연변화와 질병, 전쟁, 왕조의 교체 등 인간사를 초자연적 절대자인 상제(上宰)가 지배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므로 농사를 짓거나 전쟁을 일으킬 경우에 상제의 뜻을 미리 알아보려고 했는데, 그 방법이 바로 점이었다.

그러나 인간의 지혜가 점점 발달하면서 자연의 변화에 숨어 있는 일정한 질서를 깨닫게 되었다. 자연의 변화를 예측하는 일은 점을 통하지 않고도 변화의 질서를 깨달음으로써 가능하였다. 중국인들이 자연에서 깨달은 질서를 수로 나타낸 것이 바로 달력이다. 달력에 표시된 우수(雨水), 경칩(驚蟄) 등 24절기는 자연의 변화 과정을 예측해 놓은 것이고, 동시에 파종 수확 등 해당 절기에 해야 할 농사일을 가르쳐 주는 지표가 되었다.

그 후 전국시대에 주역의 괘ㆍ효사는 천문 역법가(음양가)와 도가의 영향을 받아 새로이 해석된다. 이로써 주역은 자연의 변화를 음(陰)과 양(陽)의 원리로 설명하는 이론체계를 확립하게 된다. 즉 괘사와 효사에 내재한 음양의 관념이 이 시대에 이르러 ‘음양론’으로 정립되고, 이 음양론을 통해 자연을 설명하고 이에 근거하여 인간의 당위규범을 정하는 이론의 틀을 갖추게 된다.

그리고 자연에 대한 합리적인 인식에 발맞추어, 괘사와 효사에 대하여 더욱 합리적이며 윤리적인 해석이 첨가되면서 주역은 단순한 점서가 아니라, 철학서이자 수양서로 발전한다. 음양론에 기초한 유기체적인 자연관은 우리 의식에 혁명적인 전환을 일으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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