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호면 장천리 生전 전남도지사전 국가보훈처장관왕인박사현창협회 회장

1986년 상반기 어느 날, 홍순기 목포상공회의소 회장께서 도지사실 방문을 하였다. 그 분은 중학교 선배로서 각별히 가까이 지내는 사이이며, 업무에 집념을 가지고 계신 분이셨다. 당시 영산강 2단계 공사가 진행되고 있을 때였다. 그는 영암 대불간척지에 공단을 조성하자는 것이었다.

처음 듣는 제안이었다. 당시 전남에는 광주에 하남공단이 있고 동부지역에는 여천공단과 광양제철이 있으나 서부지역에는 공단이 없었다. 대불공단을 조성하게 된다면 전남에는 광주-여천과 광양-영암 삼각축 공단이 형성되어 균형있는 발전을 이룩할 수 있으리라는 판단 하에 대불공단을 추진하기로 결심했다.

원래 영산강농업개발 2단계사업은 목포-영암간의 하구둑 공사를 통해 담수호를 만들어 농업용수로 활용하고, 새로 생기는 간척지는 농지로 활용하도록 계획하여 세계은행으로부터 차관을 받아 시공되고 있었다.

그러므로 농업용지를 공업단지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승인을 받아야 했다. 나는 신채우 농림국장과 협의하여, 대불단지 240만평을 공업단지로 용도변경하는 신청서를 농림수산부에 올리도록 했다. 예측한대로 며칠 안되어 불승인 통보가 왔다. 다시 용도변경 신청을 했으나 또 불승인 통보가 왔다. 불승인 이유는 세계은행으로부터 차관을 받을 때 농업용지로 협약이 되어 있으며, 아직 공사가 진행 중이라는 것이었다.

나는 반드시 공단을 조성하겠다는 생각으로 밀고 나아갔다. 여러차례 농림수산부와 경제기획원 등에 들러 공단 추진을 요청했다. 경제기획원에서는 농림수산부와는 달리 긍정적이었다. 그러나 주부부처에서 동의해 주지 않는다면 어려운 일이었다.

나는 낙후된 전남의 공업발전을 위하여 정부연구기관인 산업연구원(KIET) 문희화 원장에게 부탁하여 ‘전라남도 공업발전에 관한 연구’ 용역을 의뢰했다. 이 연구서에는 광주권의 하남공단 2,3단계 확장, 순천권의 율촌과 해룡일대 간척지 약 390만평과 목포권의 영암 대불간척지 약 240만평을 공단으로 조성하는 구상이 제시되었다. 내면으로는 대불단지를 조성하는데 역점을 두고 있었다. 이 연구서를 토대로 도에서는 ‘전라남도 공업화 중장기계획’을 수립하였다.

이 계획서를 가지고 1987년 3월 19일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정수창 회장과 중앙부처 관계관 그리고 기업인 200여명을 모신 자리에서 ‘전남지역 투자설명회’를 가졌다. 투자설명회의 역점은 대불공단이었다. 대불공단의 이점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설명을 했으며 그 자리에서 기업인으로부터 입주희망 신청을 받았다. 성과가 컸다. 28개 기업체에서 253만평의 신청이 있었다.

그날 저녁 9시 KBS 정규 뉴스시간에 박성범 앵커와 나는 전남공업화와 투자설명회에 관한 대담을 생방송으로 했다. 동아일보 사설에는 도 주관으로 투자설명회를 서울에서 갖는 것은 처음있는 일이라 하면서, 이에 관한 내용을 소개했다. 얼마 뒤 대한상공회의소에서는 정수창 회장을 비롯한 기업체 대표들이 대불단지 현지를 시찰하였다. 나도 함께 갔다. 현지를 살펴본 기업체 대표들은 공업단지로서의 적합성을 인정하고 공업단지 면적이 신청량 보다 적을 때 부족분을 더 확보해 줄 수 있느냐고 나에게 묻기도 했다.

투자설명회가 끝난 뒤 노태우 민정당 대표위원의 목포 방문계획이 있었다. 이때를 기해 하구언 건너편에 있는 대불지역을 시찰 일정에 넣어 현지에서 공단추진을 공약하도록 추진하였으나 농림수산부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그때 수행한 내무부 출신 민정당 사무차장 김태호 의원과 문창수 내무부 담당 전문위원, 김태수 농림수산부 담당 전문위원에게 대불공단 조성의 필요성을 설명하고 사업책정 지원을 요청해 동의를 받았다. 마침 농림수산부장관 교체가 있었다.
내가 전남지사 발령받을 때 같은 날 강원도지사로 임명받은 김주호 부산시장께서 농림수산부 장관으로 부임하자 마자 농림수산부에 가서 장관을 만나 대불공단 조성의 필요성을 설명하여 해주기로 동의를 받았다.

민정당 관계관들의 적극적인 뒷받침에 힘입어 1987년 9월 2일 민정당 주관으로 관계부처 장관들과 협의하여 사업추진 결정을 지었다. 당시 건설부 이규효 장관은 대불공단이 공단조성 사업임으로 건설부에서 맡아 국가산단으로 조성하겠다고 요청했다. 최종 결정하기 전에 나에게 의견을 물어와 동의해 주었다. 그 이유는 건설부에서 주관하게 되면 국가산단으로 조성하게 되고 항구 조성사업과 도로공사 등의 추진에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대불공단이 대불산단으로 결정되고, 시공은 토지공사가 담당케 되었다. 대불산단은 1987년 11월 건설부에서 기본계획 용역을 발주하여 착공 준공됨으로써 오늘에 이르고 있다. 영암 농공병진의 기초가 마련된 것이다.

행정기관에서 추진하는 사업이 행정기관 내부의 착상에 의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외부의 전문가, 지역발전에 관심 있는 분들의 충정어린 건의에 의해 시작되는 일이 많다. 나는 현직에 있을 때 좋은 아이디어를 주신 분들께 늘 감사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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