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이 작열하여 이글거리고 녹음은 눈이 부실 정도로 생기를 발산하는 성하의 계절이 오면 누군가 기다리는 사람처럼 보고 싶은 꽃이 있다. 그는 담벼락을 조심스레 슬금슬금 기어가다가 수줍은 새 아씨처럼 살포시 치마를 벌려 피어나는 꽃이다.

내 어린 날 해마다 아버님이 짚 다발을 엮어 막으신 울타리에 심지도 뿌리지도 않았지만 스스로 싹을 틔워 자라나 피었다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이듬해 또다시 피어나기를 십수년 동안 정 들었던 꽃이었다. 보고 싶은 건 꼭 나팔꽃만이 아니고 장독대 옆에 피어나던 봉숭화, 분꽃, 맨드라미, 댓돌 밑 틈새에 자세를 한껏 낮추고 형형색색의 작고 귀여운 꽃을 피워대던 채송화, 다른 편 울타리를 따라 큰 키를 자랑하던 해바라기 등 모두가 보고 싶은 꽃들이다.

이들이 나로 하여금 그리움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가난한 시절의 암울한 우리 가슴에 은연중 희망을 갖도록 위안을 해준 존재들이었기 때문이다.이들의 공통점은 모두가 크게 화려하지도 않지만 쉴 새 없이 피어나고, 자신의 모습을 크게 내세우지 않고 은근하게 피었다가 스러지듯 지는데 특히 뜨거운 여름을 맞아 끈기 있게 피어나는 점이다.우리 조상들의 정서에 딱 들어맞았을 뿐 아니라 우리들 또한 마음 깊은 곳 자리 잡은 본심에 맞닿은 꽃들이었다.

요즈음 도시의 빈 공간을 차지하는 것들은 모두가 외국에서 수입한 화려한 모습의 화초들로 순간은 보기 좋지만 옛날 우리 곁을 지키던 꽃처럼 그윽하고 정다운 맛이 없다.이러한 현실은 이미 옛 것을 멀리하고 순수한 우리 자신의 모습을 망각한 채 인생의 참맛이 어디에 있는지를 착각하고 있는 것이리라.한 시가 다르게 급변하는 세계화의 물결 속에 우리가 삶의 질을 높여줄 것이라 기대되는 부의 축적에만 정신이 팔려 정작 한국적인 것이 진실로 소중하고 나아가 가장 세계적이라는 사실을 잊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여름날 아침 이슬 머금어 피어나는 나팔꽃을 보고 있노라면 비록 작고 소박하지만 떼지어 일어나는 민초들의 함성이 들리고, 유럽을 호령하듯 나폴레옹의 군대가 불어대는 나팔소리와 말발굽 소리, 줄지어 돌아가며 모심는 사람들의 노랫가락 소리가 들리곤 하였던 것이다. 

초저녁 나팔꽃 울타리 옆에 평상을 펴놓고 모깃불 매운 맛과 함께 누나가 차려준 수제비는 둘이 먹다 셋이 죽어도 모를 정도였다.왜냐하면 구경하던 사람도 요절할 정도로 맛이 있었으니까.어쩌면 어린 시절의 나팔꽃등의 추억을 현실로 바꾸기 위하여 꽃밭을 가꾸는 일이 크게 어렵지는 않을 것 같다.하지만 선뜻 나서 꽃밭을 가꾸려는 자세를 취하지 못하는 것은 무상하게 흘러간 우리들 삶의 편린들이 추억으로 간직하여 그 무게를 지탱할 만큼 역동적이지 못하고 은연중 퇴색되었기 때문이리라.

우리들 모두 추억이라는 낡고 해묵은 가방을 매고, 밑바닥이 닳아 줄어든 세월의 지팡이를 짚고, 잃어버린 날들의 동구 밖을 서성이는 외로운 나그네가 되어 버린 것은 아닌지.강렬한 태양빛에 비록 한나절을 이기지 못하고 시드는 꽃일지라도 우리에게 희망이 있었던 것은 다음 날 피어날 봉오리들이 우후죽순처럼 자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비록 올해 피우지 못한 꽃일지라도 서둘러 화분과 꽃씨를 구해 놓았다가 날 좋은 봄날에 씨 뿌릴 수 있는 내년이 있다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우리가 인생의 황금기를 상당부분 보냈다 하나 부모형제 처자식,가까운 친지들과 같이 할 나머지 인생이 있기에 가슴 속에서나마 나팔꽃을 피워 뒤늦은 희망가를 불러봄이 어떠할까.

새로운 아침을 꿈꾸는 젊은이처럼 두 팔을 번쩍 들어 눈물 나도록 힘차게 세상을 향한 진군나팔을 불어봄 또한 어떠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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