ㅣ 전석홍 고문 특강 ㅣ

전석홍 서울 달메회 고문은 ‘왕인박사와 영암’이라는 주제의 특강에서 “우리 고향 영암에서 가장 큰 자랑거리는 왕인박사와 도선국사가 있지만, 특히 왕인박사는 1600년 전에 백제 17대 아신왕 때 천자문 1권과 논어 10권을 가지고 일본에 건너가 한자와 학문을 전파하면서 일본의 태자스승 등 지도자들을 가르친 훌륭한 인물이었다”고 강조했다.

전 고문은 “왕인박사가 일본 학문의 시조이며 유교의 원조로 글자가 없는 일본에 일본말을 한자로 표현한 ‘만요가나’ 창시자로 알려졌고, 일본의 학문을 일으킨 스승이었으며, 일본에서도 왕인박사의 업적을 기려 유적비를 세우는 등 왕인박사의 훌륭한 인품을 존경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전 고문은 또 “왕인박사에 대한 기록은 일본의 ‘고사기’와 ‘일본서기’에 있으나 우리나라의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는 기록이 없다”면서 “1607년부터 일본에 간 통신사의 ‘사행록’에 기록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전 고문은 이어 “1932년 영산포의 일본 절이었던 본원사 스님 아오끼가 영암 성기동에 왕인박사 동상을 세우려 구상했으며, 1937년 조선조 시조시인 이병연이 쓴 책에도 왕인박사가 영암 성기동에서 일본에 경전을 가지고 갔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고 말했다.

전 고문은 구비전설을 소개하면서, 왕인박사는 영암 성기동에서 출생하여 수학한 뒤 상대포에서 일본에 건너갔다는 내용이 있다고 덧붙였다.

1973년 이성근 박사는 왕인박사현창협회를 구성, 회장으로 활동했고, 1976년 전남도지정 문화재로 지정된 이후 왕인박사 유허비가 세워졌으며, 1985~87년 왕인박사유적지 정비사업이 이뤄져 앞으로 국가지정 문화재로 지정되는 문제만 남아 있다“고 말했다.

전 고문은 또 “1984년 7월 전남도지사 재직 때 일본인들이 한국에 오면 오직 무릎을 꿇고 절할 곳은 왕인박사 사당 밖에 없다고 당시 대통령에게 보고한 후 왕인박사 유적지를 조성했다”고 밝히고 “앞으로 많은 사학자들이 이 같은 역사적 사실을 인정하는 많은 자료들을 찾아서 왕인박사 유적지가 국가지정 문화재로 지정될 수 있도록 다 같이 힘쓰자”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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