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암의 숨결을 찾아 ④

■ 영암천의 추억 ②

풍요로운 밥상을 제공했던 영암천

자해젓

영암사람은 영암천에서 나는 해산물을 먹고 자랐다. 월출산에서 흘러내린 맑은 물은 바다와 만나 풍요로운 어족자원을 형성했다. 월출산에 눈이 녹아 영암천으로 흘러들어 갈 때쯤이면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지점에서 잡히는 작은 새우가 있다.

토하보다 작은 크기에 붉은색 자해는 마치 모기 유충처럼 생겼다. 날이 더워지면 흙내가 나기 때문에 구정 전후에 잡힌 자해가 최고다. 어린 자해에 쪽파, 마늘, 고춧가루, 통깨를 버무려 참기름 한 방울 떨쳐 비벼내면 잃었던 입맛도 돌아온다. 다른 지역 사람은 몰라도 영암사람은 누구나 자해젓갈을 먹어봤을 것이다.

영암천변 보리밭에 청보리가 익어가고 모내기 준비를 시작할 곡우가 다가오면 영암천 하구 서해안 바다에는 조기가 가득했다. 영암사람 밥상에는 으례껏 황실이 찌개가 올라오는 시기이다. 황실이 배가 오가는 영암천에는 살이 통통한 숭어가 뛰어 오르기 시작한다. 영암천에서 잡히는 붉은 색 참숭어는 살이 기름지고 알이 차지기로 유명하다. 오월이면 산란을 앞둔 숭어를 잡아 집집마다 어란을 만들기 시작한다.

집 간장에 숭어알을 담가 간이 배면 꺼내어 소쿠리에 가지런히 놓아두고, 참기름을 바르고 말리기를 수차례 반복하면 어란이 탄생한다. 어란을 얇게 썰어 조금씩 씹어 먹으면 입 안 가득 향이 퍼지고, 구수한 단맛이 난다. 영암 어란은 임금님 진상품으로 인정받을 만큼 전국 최고로 인정받았다. 지금은 어란 만드는 사람이 장인으로 대우 받지만 옛날에는 어느 집에서나 해먹었던 토속 음식이었다.

열무김치 곁들인 운저리의 맛

영암사람은 문절 망둑어를 운저리라고 부른다. 운저리는 갯벌이 있는 곳이면 어디에나 있지만 영암사람의 운저리 사랑은 남다르다. 동네 사람들은 물이 빠지면 갯벌에 나가 운저리 구멍을 찾아 손을 넣어 잡거나, 대나무로 만든 깔대기 모양의 통발을 사용하여 얕은 물속에 통발을 덮고 위에서 손으로 더듬어가며 갇혀있는 운저리를 잡아낸다.

초여름 작은 운저리는 깻잎에 싸서 된장을 얹어 먹으면 고소한 맛이 일품이다. 늦여름 중간 크기의 운저리는 잘게 썰어서 잘 익은 열무김치에 초고추장을 넣어 무쳐낸다. 가을에 잡힌 운저리는 무를 썰어 넣어 깔끔한 탕으로 끊여내면 시원한 맛이 일품이었다.

영암천에 물이 빠지면 먹거리는 더욱 풍성했다. 영암천 고운 갯벌에는 흔하지 않게 생긴 고기가 있다. 갯벌 위를 뛰어다니는 짱뚱어는 얼핏 보기에 메기 새끼처럼 생겼지만 눈알이 튀어나오고 거무튀튀한 색에 날개처럼 생긴 지느러미를 달고 있다. 짱뚱어는 청정 갯벌에서만 사는 보기 드문 어종이다. 훌치기 낚시를 날려 잡는 짱뚱어 잡이는 기예에 가까웠다.

짱뚱어는 전골로 끊이거나 탕으로 즐긴다. 짱뚱어를 삶아 고운 체로 거른 후 된장을 풀어 시래기를 넣어 걸쭉하게 고아내면 보양식이 따로 없다. 지금도 짱뚱어탕은 고향을 찾는 향우들의 단골 메뉴이다.

대갱이

영암천 갯벌 속에는 짱뚱어 못지않게 희한하게 생긴 대갱이라는 녀석이 산다. 대갱이는 갯벌 깊이 살기 때문에 잡기도 싶지 않지만 특수하게 만든 갈고리를 휘저어 끄집어 낸다. 작은 뱀장어처럼 생겼는데 눈은 작고 코는 뭉툭하며, 커다란 입에는 크고 성긴 이빨이 돌출되어 있다. 대갱이는 바닷바람에 꾸덕꾸덕 말려서 북어 패듯 두드려서 숯불에 구운 다음 적당한 크기로 잘라서 간장, 고춧가루, 참기름에 참깨를 뿌려 무쳐내면 고소하고 담백했다. 

독천의 명성을 잇게 한 문수포 낙지

낙지호롱

독천낙지가 유명해진 것은 영암천과 미암 문수포의 고운 갯벌 속에서 자란 부드러운 낙지 덕분이었다. 초가을 세발낙지가 나올 때면 바가지에 담아온 수십 마리의 세발낙지를 손으로 대충 떼어내고 그냥 입으로 가져가 오물오물 씹어 먹었다. 세발낙지가 커져서 생으로 먹을 때에는 탕탕이가 제격이다. 잘 다진 낙지에 참기름을 듬뿍 올려 한 잎에 털어 넣는다. 볏집에 말아서 구워낸 낙지 호롱이는 제사상에 올리는 귀한 음식이다. 각종 양념을 발라 짚불로 구워낸 호롱이는 볏집 특유의 향이 배어 있다.

물 빠진 뻘밭에는 여인들의 일손이 더욱 바빠진다. 갯벌 구멍을 찾아 손을 집어넣으면 어른 검지 손가락만한 통통한 맛조개가 올라온다. 어린이들도 엄마 따라 맛조개 잡이에 열심이었다. 맛조개를 업으로 잡는 사람들은 마을마다 집집마다 찾아가며 맛조개를 팔아야 했다. 맛조개는 애호박과 함께 찌개를 끊이거나, 새콤한 초무침으로 즐겼다.

애호박과 함께 살짝 데친 후에 양파, 풋고추, 깻잎에 초고추장을 넣고 버무려 내면 없어진 입맛도 돌아오게 했다. 요즘 맛조개는 모래가 짜글짜글하지만 영암천의 고운 갯벌에서 나온 맛조개는 이물질이 씹히지 않았다. 그만큼 갯벌이 좋았다는 의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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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진강변 모래밭이 배경인 대중가요 ‘당신의 마음’

김지평의 ‘당신의 마음’

‘당신의 마음’은 1972년에 방주연이 앨범으로 발표하여 폭발적인 인기를 얻은 대중가요이다. 가사는 영암군 덕진면에서 태어나 영암에서 고등학교까지 다녔던 대중음악 평론가 김지평이 썼다.

바닷가 모래밭에 손가락으로
그림을 그립니다 당신을 그립니다
코와 입 그리고 눈과 귀 턱 밑에 점 하나
입가에 미소까지 그렸지만은
아-아- 마지막 한 가지 못 그린 것은
지금도 알 수 없는 당신의 마-음
코와 입 그리고 눈과 귀 턱 밑에 점 하나
입가의 미소까지 그렸지만은
아-아- 마지막 한 가지 못 그린 것은
지금도 알 수 없는 당신의 마음

노래의 배경은 그가 어린 시절 놀았던 영암천변 모래사장이다. ‘당신의 마음’은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 물씬 풍겨나는 서정적인 노래이다. 1970년대 영암 덕진강변 모래밭을 배경으로 만들어진 곡인데, 감수성이 예민한 수많은 연인들의 가슴을 울린 대표적인 노래이다. 영암출신 작사자 김지평은 ‘당신의 마음’을 통하여 1973년 TBC 가요대상 작사 대상과 한국가요대상 작사 대상을 수상하였다.

김지평이 이처럼 전 국민의 심금을 울린 사랑스런 노랫말을 쓸 수 있었던 것은 아름다운 금빛 모래사장이 있는 영암천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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